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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th 히스토리

2003년은 내셔널리그의 출발점이었다. 2003년 전까지 실업축구는 연맹전, 선수권대회로 운영됐다. 하지만 2003년부터 구단별 연고제 시행과 홈앤드어웨이 경기방식을 통한 정규리그로 체제를 변화했다. 이름도 K2리그(내셔널리그 전신)로 바꾸며 실업축구는 야심차게 출발했다. K2리그엔 총 10개 팀이 참가했고 지금과는 팀명부터 행정까지 많이 다르고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산이 바뀐다는 10년이 흐른 지금은 2003년은 역사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내셔널리그가 10주년이 되면서 역사와 추억이 쌓였다. 그래서 준비했다. 누군가의 기억엔 선명할 추억을, 누군가는 미처 알지 못한 순간을 지금부터 떠올리고자 한다. 지금 출발한다. 응답하라! 내셔널리그!

K2리그, 그 이름을 알리다
프로2부를 위한 K2리그 추진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실업축구는 연중리그로 처음으로 운영됐다. 이때는 내셔널리그가 아닌 K2리그라는 이름이었다. 10개 팀이 참여한 리그에선 홈앤드어웨이 경기방식을 채택해 전-후기리그로 운영했다. 당시 전기리그(4.12-6.7)는 ‘현대자동차컵 2003 K2리그’, 후기리그(9.6-11.9)는 ‘인터막스컵 2003 K2리그’였다. 전후기리그의 우승팀은 ‘인터막스컵 2003 전·후기 통합 챔피언 결정전’을 통해 통합우승팀을 가렸다.

1.대한민국 축구 리그 시스템에서 2부 리그에 해당한다. 1964년 시작된 전국실업축구연맹전이 시초로, 2000년 대한축구협회가 프로 2부리그 창단 방안을 검토하면서 기존의 춘계실업연맹전을 실험적으로 현대자동차 K2리그로 운영한 적이 있다. 참고 - 위키백과

역사의 시작이 된 10팀
K2리그의 시작은 10개 팀이었다. 지금 봐도 익숙한 이름이 있는 반면, 어딘가 조금은 어색한 팀도 있다. 수원시청, 강릉시청, 울산현대미포조선, 대전한국수력원자력은 2003년 출범부터 지금까지 같은 연고에서 같은 이름을 유지해왔다. 반면 김포국민은행(現, 고양KB) 익산할렐루야(現, H FC) 이천상무축구단(2005년까지 리그참가), 인천한국철도(現, 인천 코레일) 의정부험멜코리아(現, 충주 험멜) 서산시민축구단(2010년까지 존속)은 팀명과 연고지의 변화가 있었다.
원년 우승의 영광은?
리그 첫 해의 우승, 누구나 탐낼만한 타이틀이다. 그 타이틀을 가져간 팀은 김포국민은행(現고양KB)이었다. 전기리그 우승팀이었던 김포국민은행은 통합챔피언 결정전에서 후기리그우승팀 이천상무축구단(現상주상무)을 만났다. 11월 15일에 열린 1차전에서 국민은행이 3-2로 승리를 거뒀고, 11월 19일에 열린 2차전에서도 2-1로 승리해 원년 통합우승컵을 들었다..
완벽한 철벽수비는 국민은행 우승의 이유!
2003년엔 시상식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 해 좋은 활약을 한 선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전기리그 득점왕은 7득점을 기록한 할렐루야의 이성길이었다. 이성길은 현재까지도 H FC에서 플레잉코치로 활약 중이다. 전기리그 우승팀의 수비수 장현호가 전기리그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후기리그 득점왕은 이현동(상무·4골)이었고 최우수선수상도 상무의 이도권이었다. 하지만 챔피언 결정전 MVP는 국민은행의 수비수 김기종이 수상했다. 흥미로운 것은 국민은행이 두 번의 최우수 선수를 배출했는데 두 선수 모두 수비수였다는 사실!

2003 K2리그의 출범은 한국 축구 발전의 밑받침이 됐다. 시작이 없었다면 10년이란 역사도 없었을 것이다.
2003년은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해이기도 하다.